내 삶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 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눈이 부시게
첫 방송 하기전에 잠깐의 광고를 보면서 한지민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이 것도 봐야하는 드라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전에 출연한 아는 와이프의 강렬함 때문이랄까?
더구나 아는 와이프에서도 엄마와 딸 역할로 나왔던 이정은 님과 한지민이 또 만났기에 더 기대하는 것도 있었다. 얼마전 드라마에서도 함께 연기 했는데 얼마 안되서 다시 엄마와 딸 역할로 연기하는 케미가 어떨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걸 끝까지 보게 만든 사람은 바로... 손호준.
틈틈히 나오는 손호준의 코믹스러움이 이 드라마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부터 답답했던 것도 있었고 중간 중간에 짜증나는 것도 있었는데 그걸 개운하게 해준게 바로 손호준이였다. (아마도 손호준 아니였음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처음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뭐랄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어쩔땐 오버랩이 되어 이게 현재인지 과거인지도 헷갈릴 때가 있었다. 초반 1, 2화 때가 그랬었는데 아빠를 살리기 위해 시계를 되돌리는 순간부터는 언제나 현재인 것 처럼 느껴졌다.
이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 시계가 아닌가 싶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빨리가게 하는 이 시계가 10화까지 진짜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10화에서 진짜 이유가 나오는데. 여기서 솔직히 전율이 느껴졌다. 닭살이 돋을 정도로... 어떻게 알츠하이머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대단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혜자는 25살 이후의 기억을 잃어 버렸다. 그랬기에 하루 아침에 갑자기 늙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보니 2화 때인가 3화 때인가 방을 뛰쳐 나오는 혜자를 멍하니 바라봤던 가족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혜자를 가족들은 속아주고 딸이자 동생인 것 처럼 행동한 것 같다.
즉, 타임머신이나 타임리프가 아니라 알츠하이머에 걸린 혜자의 입장에서 보여준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10회까지 그런 생각을 전혀 갖지 못할 만큼 혜자의 입장과 시선이었기에 감쪽같았다. 지금까지의 드라마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의 시선에서 한번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문뜩 알고만 있다고 생각했던 알츠하이머가 당사자 입장에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10화까지는 김혜자의 이야기였다면 11~12화는 가족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던 것 같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혜자를 모셔야하는 안내상과 이정은의 이야기와 준하(남주혁)의 죽음, 그리고 불편한 다리의 이유 등을 하나씩 풀어 나갔다. 거기서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안내상의 이야기.
다친 다리 때문인지 엄마 때문인지 내 사춘기는 유난히도 길었다.
불편한 다리로도 잘 살도록 강하게 키웠고, 누구보다 아들을 아꼈던 혜자.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눈을 쓸어줬던 그 모습에 안내상의 마음도 스스르 무너져 내렸다.
혜자가 자신에게 했던 모든게 그저 싫어서 미워서가 아니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12화의 짧은 드라마인데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다. 가슴속 응어리가 사라진 느낌이고 정말 따뜻해지는 드라마였다.
막장이 없는 드라마였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뜻 깊게 다가올 줄 몰랐다. 2019년 최고의 드라마가 아닐런지 싶더라.
시청률도 9.7%로 막을 내렸다. 정말 눈이부셨던 1달간의 추억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