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천 명교리 해수욕장.
4월이라 그런지 날씨도 좋고, 많은 이들이 쉬러왔음.



회천 명교리 해수욕장.
4월이라 그런지 날씨도 좋고, 많은 이들이 쉬러왔음.



15명 남짓한 작은 반에서 뛰어 놀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십수년이 지나고.
지금은 검색해 보니 23명 남짓한(2019.2.13. 기준) 학생이 있는 것 같다.
폐교한다는 둥 통폐합 한다는 둥의 소리는 자주 나왔던 것 같은데,
아직도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추억이라는 것이 기억으로만 있는 것 보다는 이렇게 실물로 남아서 보면서 느끼는게 좋은 것 같다.
아직도 고대 유물처럼 남아 있던 "이승복" 동상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저 동상 부근에서 참 많이 놀았는데.
옆에는 근엄한 세종대왕이 있다.
쉼터는 참 좋았다.
버드나무인가? 무튼 푸르게 잎이 올라오고 울창해지면 이 곳 밑은 정말 시원한 장소가 된다.
어릴 때는 급식이 아니고 도시락을 맨날 싸갔는데 한번씩 여기서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독서하는 동상
이순신 장군 상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앞에 둥근 나무들이 많았다. 거기서 숨으면서 숨바꼭질 했던 기억이 난다.
컴퓨터로 게임하는 시대지만, 나 어렸을 때는 뛰어 노는 시대이다 보니 이곳 저곳 많이 올라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전설로만 여겨졌던게 하나 있었는데,
저 이순신 동상 발 사이에 머리에 넣으면 눌려 죽는다는 전설도 있었다.(내 기억으로는 아무도 저 밑으로 머리를 넣지 않았다)
철쭉이 피면 너무나 이뻤던 산책로
라고 적었지만, 산책로 보다는 그냥 뛰어 다니느라 바빴던 곳이였다.
이순신 동상 앞을 가기 위한 통로.
커서 와보니 너무나 작아 보이는 학교
어렸을 때 그렇게 커 보였던 학교가 커서 보니 정말 작은 학교였다는 생각이 든다.
저 창문 한칸에 한 반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우리 때는 창문 두 칸에 한 반씩 했었는데. 그 만큼 학생 수가 줄었다는 뜻이겠지.
교장 선생님 말씀하는게 생각나는 구령대
이 곳에 올라가시면 쉽게 내려오지 않으신 교장 선생님.
개그로 나왔지만, 정말 공감갔던 거다.
어렸을 때 2교시 하고 20분 정도 쉬었을 때 밖으로 나와서 국민체조 하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풀매기. 그리고 이 시간에 우유 당번이 우유를 가지러 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오래 안됐는데 오래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언젠간 역사속에 사라질 학교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한번씩 시골에 내려갈 때 마다 달라진 풍경에 몇번 놀랬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가기 전에 더 많이 찍어 놔야겠다.
지금은 없어진 기억속의 사장나무.
마을 앞에 있는 큰 느티나무를 사장나무라고 한단다.
이곳은 내 고향이자 삶의 터전(?) 이였던 곳이다.
물론 나는 조금 더 들어가야 하는 깊숙한 촌이지만,
그래도 학교 다녀올 때면 가장 먼저 보는 나무가 이 나무 였던 것 같다.
마을 어귀, 즉 동네 어귀에서 마을 지켜준다는 사장 나무로 불렸던 것 같다.
무더운 어른에겐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했고,
어린 아이들에겐 하나의 놀이터가 되었던 곳.
지금은 뿌리만 있는, 죽어 버린 나무이지만,
한번씩 지나가면 생각이 난다.
웅장하고 큼직했던, 고령의 느티나무.
다행히 사진으로 남아 있어 기록에 남겨본다.
P.s. 컬러로 찍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 생각 없이 흑백효과를 넣고 찍었다.
어렸을 때 항상 있었던 것 처럼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흑백이라도 남아서 다행이지만 아쉬운건 아쉬운 법.